소개
민중의 적 — 현대 한국어 완역·주석판
도시는 무엇으로 병드는가?
헨리크 입센 | 원제 En folkefiende (1882)
작은 해안 도시가 온천 요양시설 하나로 가난에서 벗어났다. 여관이 차고 땅값이 오르고 실업자가 줄었다. 그런데 그 온천장의 물이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한 사람이 알아낸다. 하필 그 시설의 의무관이고, 하필 시장의 동생이다.
토마스 스토크만 박사는 진실을 알리면 도시가 자신에게 고마워하리라 믿는다. 그러나 등을 돌리는 것은 형만이 아니다. 그를 "민중의 벗"이라 부르던 진보 신문이, 뒤를 받치겠다던 소상인 조직이, 마침내 그를 아껴 온 시민 전체가 차례로 떠나간다. 시민 대회에서 그는 거의 만장일치로 민중의 적이 된다. 절차는 완벽하게 민주적이었다.
입센은 이 익숙한 고발 서사를 곧바로 뒤집는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순결한 영웅이 아니고, 그를 버리는 사람들 역시 악당이 아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데 모두가 "달리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할 때, 도시는 병든다. 오염된 것은 물만이 아니었다.
1882년의 희곡이지만 여기 등장하는 모든 장면은 지금도 반복된다. 위험을 알린 사람이 먼저 비용 유발자로 취급받는 구조, 논쟁이 사실에서 동기로 옮겨 가는 순간, 조회수가 편집 방침이 되는 신문. 이 작품이 140년 동안 무대에서 내려온 적이 없는 이유다.
이번 판본은 5막 전체를 현대 한국어로 완역하고, 시대 배경과 성경 인용 등 오늘의 독자에게 낯선 대목에 주석 32개를 달았다. 용어와 인물 간 존칭 체계를 전편에 걸쳐 통일해 소리 내어 읽어도 자연스럽도록 다듬었으며, 작품 해설과 오늘의 의미, 토론용 질문 10가지, 작가 연보를 함께 실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가장 홀로 선 사람이다."
이 마지막 대사를 승리로 읽을지, 위태로운 고집으로 읽을지는 독자의 몫이다.
본문 중
아슬락센. 의장으로서 발언자에게 방금 사용한 경솔한 표현을 철회할 것을 요구합니다.
스토크만 박사. 절대로 못 합니다, 아슬락센 씨! 제 자유를 빼앗고 제가 진실을 말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바로 이 공동체의 다수입니다.
호브스타드. 다수는 언제나 옳습니다.
빌링. 진실도 다수 편이지요, 하느님께 맹세코!
스토크만 박사. 다수는 결코 옳지 않습니다. 결코! 그것이야말로 독립적이고 지성 있는 사람이라면 맞서 싸워야 할 사회적 거짓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 그래요, 소리를 질러 저를 눌러 버릴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대답은 못 하십니다. 다수에게는 힘이 있습니다. 불행히도요. 그러나 정의는 없습니다.
서평
그가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를 응원할 수 없다
《민중의 적》은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진실을 발견한 사람과 그것을 덮으려는 권력. 이 익숙한 구도는 3막에서 무너진다. 스토크만 박사를 배신하는 것은 시장인 형만이 아니다. 그를 "민중의 벗"이라 부르던 진보 신문이, 뒤를 받치겠다던 소상인 조직이 차례로 떠난다. 입센이 진짜로 겨눈 대상은 보수 관료가 아니라, 자기 이익을 이상의 언어로 포장하는 쪽이었다.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4막이다. 발언을 제지당한 스토크만은 즉흥 연설로 폭주하며 인간을 잡종견과 순종견에 빗댄다. "다수에게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의는 없습니다." 그는 옳다. 그리고 바로 그 입으로 20세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우리가 아는 언어를 쓴다. 입센은 관객에게 편안한 자리를 주지 않는다. 그를 지지하려면 그의 오만까지 삼켜야 하고, 그를 거부하면 오염된 물을 마시는 쪽에 서게 된다.
이 작품이 놀랍도록 현대적인 지점은 다른 데 있다. 5막에서 유리장이도, 집주인도, 학교장도, 선주도 같은 말을 반복한다. "달리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무도 스토크만을 미워하지 않는다. 각자는 남의 눈치를 볼 뿐이다. 여론은 실체 없이도 작동하고, 각자가 상상한 '남들의 생각'이 실제 여론이 된다. 입센은 사회심리학이 이 현상에 이름을 붙이기 훨씬 전에 그것을 무대에 올렸다.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정작 조용한 곳에 있다. 마지막 막에서 그는 아내와 자식의 유산 전부가 걸린 제안을 거절한다. 침묵하기만 하면 되는데도 커다랗게 '노' 세 개를 써 보낸다. 4막이 그의 최악이라면 이 장면은 그의 최선이다. 두 장면을 함께 보아야 이 인물이 온전해진다.
마지막 대사는 오랫동안 영웅적 선언으로 인용되어 왔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그 말을 듣는 사람은 가족뿐이고, 아내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승리가 아니라 사랑이 남는다. 이 작품이 140년 동안 무대에서 내려온 적이 없는 이유는, 답을 주지 않고 질문만 남기기 때문일 것이다. 다수가 틀렸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다수가 틀렸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확신하는가.
헨리크 입센 (Henrik Ibsen, 1828–1906)은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은 '현대 연극의 아버지'로 불린다. 1828년 노르웨이 남부의 작은 항구 도시 시엔에서 태어난 그는 부친의 파산으로 어린 시절 가난을 겪었고, 약제사 견습생으로 일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북유럽 전설과 역사를 소재로 한 운문극을 썼으나, 20여 년간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망명하듯 지내며 작품 세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인형의 집』(1879), 『유령』(1881), 『민중의 적』(1882)로 이어지는 사회극에서 그는 결혼과 가족, 도덕과 명예라는 당대의 견고한 관념을 무대 위에서 해부했다. 낭만적 환상 대신 일상의 언어로 중산층 거실을 그려내고, 그 안에 숨은 위선과 억압을 드러낸 것이다. 노라가 문을 닫고 집을 나서는 마지막 장면은 유럽 전역에 스캔들을 일으켰다.
후기작 『헤다 가블러』, 『건축가 솔네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에서는 사회 비판보다 인간 내면의 어둠과 자기기만으로 시선을 옮겼다.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극작가로 꼽히며, 그가 남긴 질문들은 오늘날에도 낡지 않았다.
노희찬(盧嘻撰)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만의 서재를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이 글로 표현됨으로써 사회의 지식자본을 축적하는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미래 세대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물려주는 것이지요. 자신의 삶에서 축적된 지혜를 글로 남기는 것 또한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명이 됩니다.
작가(필명 노진경, 해준, 해운, 반야도)는 30여년간 기업체를 대상으로 영업활동을 하고, 비즈니스 스킬 강의를 하고 있으며, 경기도 광주 수레실길에 서재와 삶의 공간을 마련한 후 시와 산문을 집필하고, 전자책 출판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30여년간의 비즈니스 스킬 강의 내용을 책으로 출간하였습니다. 특히 생성형인공지능인 챗GPT와 Claude를 활용해 실용서(20대 여성을 위한 건강한 레시피, 레드와인 두 배로 즐기기, 근육맛집 등)와 소설(네오서을2150, 네오 제네시스, 화성 오디세이, 사랑재회, 장미와 가시, 파라다이스는 없다, 두근두근두근, 사이버 판사, 사랑과 결혼사이, 나비의 사랑 사랑과 결혼사이, 보이지 않는 경영자, 정원사의 지혜, 섬기는 리더십, 꿈에서 깨어난 사랑, 감정거래1,2. 지구의 대화 등), AI를 활용해 PDF전자책작가되기, 위대한 시인들과 시쓰기 따라하기, AI시대 글쓰기 혁명, 청년들에게 전하는 소설인 “길을 찾다” 등을 집필해 출간하고 있습니다.